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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노트북 혁명” 호언… “지금까지의 컴퓨터는 틀렸다”

by hasd 2011. 5. 13.



장내가 술렁였다. 맨발에 플라스틱 샌들만 걸친 채로 ‘그’가 나타났다.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었다. 그의 재산은 약 198억 달러(약 21조4800억 원).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구글의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함께 세계 24위의 재력가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105위에 불과하다.

구글 직원들은 “브린은 회사에서 화장실과 식당에 들어갈 때만 빼고는 늘 맨발로 지낸다”고 귀띔했다. 이날은 기자회견장에 오느라 샌들이라도 신었다는 것이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모두가 과연 가능하겠느냐고 되묻던 ‘완전히 새로운 컴퓨터’가 현실이 됐다”고 얘기를 시작했다. 그 컴퓨터는 ‘크롬북’으로 불렸다.

11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구글 I/O’ 행사 둘째 날의 주제는 ‘크롬’이었다. 구글이 만들어 오던 운영체제(OS)와 웹브라우저의 이름인데, 구글은 이를 이용해 노트북을 만들었다. 그게 크롬북이다. 제조는 한국 삼성전자와 대만 에이서가 맡았다. 다음 달 15일부터 미국 영국 등 세계 7개국에서 팔린다. 한국 판매는 그 뒤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브린은 “마이크로소프트(MS)나 다른 OS 회사들은 오늘날의 컴퓨터를 예전 컴퓨터보다 더 복잡하게 만들어놓고 우리 모두를 괴롭힌다”며 “크롬은 소비자와 기업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호언대로 크롬북은 기존 노트북과는 완전히 달랐다. 우선 부팅 속도가 빨라 전원 버튼을 누른 뒤 8초만 지나면 쓸 수 있는 상태가 됐다. 기존 윈도 노트북은 1분도 넘게 걸린다. 사용자가 직접 ‘장치 드라이버’를 설치한다거나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등 복잡한 일을 할 필요도 없다. 크롬북이 인터넷에 연결됐을 때 구글 서버가 알아서 대신해 주기 때문이다.

판매 방식도 크게 다르다. 크롬북의 일반 소비자 가격은 349∼499달러이지만 주력 시장은 소비자가 아닌 기업 고객이다. 크롬팀을 이끄는 구글의 선다 피차이 부사장은 “사용자 1인당 월 28달러를 내면 구글이 소프트웨어 설치와 애프터서비스, 최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물론이고 새 노트북 교체 비용, 노트북의 인터넷 통신비용까지 부담한다”고 말했다. 기업 전산담당자의 업무가 크게 줄어드는 셈이다. 구글은 통상 기업 직원 1명이 컴퓨터를 쓰기 위해 연간 3000달러 정도를 쓰는데, 이 비용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한다. 기업으로선 솔깃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구글은 미국과 유럽 통신사와 제휴해 크롬북에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고 SAP, 시트릭스, VM웨어 등 기업 소프트웨어 업체에는 크롬북에서 작동하는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만들게 했다. 삼성전자, 에이서, 인텔 등은 하드웨어 유지보수 및 신제품 공급을 맡는다. 구글은 사실상 마진을 남기지 않고 이런 제휴회사에 기업 고객의 월 사용료를 나눠줄 계획이다. 구글은 인터넷 사용이 늘어나면 광고 매출이 늘어나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계산이다.

다만, 이날 행사에선 “이건 무조건 구글만 믿고 따라오라는 소리”라며 “구글이 세계인의 정보를 모으는 ‘빅 브러더’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크롬북은 하드디스크 대신 인터넷에 파일을 저장하는데 이 경우 개인의 주요 정보가 고스란히 구글에 저장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피차이 부사장은 “구글을 믿지 못하는 이들을 감안해 MS의 검색, 야후의 e메일, 드롭박스의 저장공간을 사용해도 되게 만들었다”며 “구글은 크롬의 프로그램 한 줄까지 모두 뜯어볼 수 있도록 제품을 투명하게 공개하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해명했다.

크롬북이 보편화되면 MS의 윈도 OS와 MS오피스는 커다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브린은 “구글 직원 가운데 MS 윈도 컴퓨터를 쓰는 직원은 20%도 되지 않는다”며 “내년에는 크롬북 때문에 이 수가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PC가 등장한 후 30년 동안 변함없던 컴퓨터 시장이 처음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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