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닐스 보어는 머리가 큰 과학자로도 유명하다. | 과학자의 명언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 알 수 있지만, 혹시 닐스 보어의 머리가 너무 크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나요? 체구에 비해 머리가 너무나 큽니다. 요즘 말로 이야기 하자면 그야말로 왕짱구입니다. 머리가 크고, 그래서 뇌가 크니까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닐까요?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보어는 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치 독일이 덴마크를 점령하기 직전까지 연구소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는 덴마크를 탈출할 계획을 세웁니다.
노벨 물리학상을 이미 받아 유명해졌기 때문에 영국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영국 특공대가 덴마크로 와서 보어를 구출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래서 보어를 공군 폭격기에다 실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폭격기 경우에는 고도(altitude)가 높기 때문에 산소마스크를 써야 합니다. 산소마스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맞게 쓸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보어의 머리가 하도 커서 산소 마스크가 맞지 않는 겁니다. 호흡이 곤란해지지 않겠어요? 덴마크에서 영국 런던으로 가는 동안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고 합니다.
머리가 얼마나 컸으면 산소마스크가 맞지 않았을까요? 머리가 큰 짱구들이 똑똑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예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뇌보다 용량이 많고 훨씬 똑똑한 로봇이 나온다고 합니다. 10년 정도면 인간의 지능과 비슷한 로봇이 나오고 20년 후면 훨씬 나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 때가 되면 머리가 크다는 게 별로 자랑거리가 안 되겠죠?
마이트너와 하이젠베르크도 제자
토마스 한과 더불어 핵분열(nuclear fission)을 발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리제 마이트너는 보어의 제자로 그를 존경했습니다. 불확정성 이론(theory of uncertainty)을 내놓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도 제자입니다.
히틀러 집권 당시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그램의 책임자가 하이젠베르크였습니다. 제자이자 양자역학의 학문적 동지였던 두 사람의 운명은 참 아이러니컬합니다. 보어는 미국으로 건너가 원자폭탄 개발계획인 맨하탄 프로젝트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관계가 적대적인 대립적으로 바뀐 것이죠.
훗날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의 대가인 파이만의 이야기입니다. 보어는 맨하탄 프로젝트에서 너무나 중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름도 본명이 아니라 다른 이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안보(security)를 이유로 보어가 쓴 이름은 니콜라스 베이커(Nicholas Baker). 그리고 보어가 가는 곳곳마다 비밀요원들이 배치돼 있었고 동료들하고 이야기도 함부로 못하게 했답니다.
맨하탄 프로젝트를 이끈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 연구소에서 보어는 그래도 후배들을 사랑해서 ‘고해신부(father confessor)’로 통했습니다. 동료들의 고민과 아픔을 들어주는 자상한 선배라는 내용입니다. 고민과 아픔이란 대량살상무기가 될 원자폭탄에 대한 동료들의 두려움입니다.
“양자역학은 대단한 세계”
양자이론의 대가인 하이젠베르크가 그의 저서 <물리와 철학(Physics and Philosophy)>에 남긴 이야기입니다. 양자이론이 너무나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느낀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그의 학문에 대한 대단한 탐구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I remember discussions with Bohr which went through many hours till very late at night and ended almost in despair; and when at the end of the discussion I went alone for a walk in the neighboring park I repeated to myself again and again the question: Can nature possibly be so absurd as it seemed to us in these atomic experiments?
나는 보어와 밤늦게까지 여러 시간 동안 계속된 토론을 기억한다. 그러나 토론들은 대부분(아무런 소득도 없이) 허망하게 끝났다. 토론이 끝나면 나는 혼자서 이웃 공원을 산책했다. 그리고는 이러한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계속했다. 원자실험(이론)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자연이란 터무니 없는 것일까?”
어떤 내용인지 아시겠어요? 과학은 복잡한 현상을 단순하게 처리하는 학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잡하고 다양하게 일어나는 자연의 현상들은 하나의 공식이나 틀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발견하는 일이죠. 그러나 원자의 세계에 입문해 보니 일정한 시스템은 거의 없고 더더욱 복잡해 진다는 것이죠.
하이젠베르크는 당시 대선배라고 할 수 있는 보어를 만나 토론을 하면 자연의 이치를 설명할 수 있는 과학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하면 할수록 해답은커녕 머리만 더 복잡해지는 겁니다. 양자 물리학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대단한 세계라는 것이죠. 그래서 보어와 토론하면 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지니까 자연, 즉 과학적 논리라는 게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내용입니다.
20세기의 물리학이라는 양자역학은 고전물리학과 상당히 다릅니다. 예를 들어 거리=속도x시간이라는 생각이나, 또 뭐가 있을까요? 어쨌든 이러한 고전적인 공식으로 이 양자 세계를 설명하기가 곤란하다는 겁니다.
“양자역학은 패러독스, 그러나 맞는 이론”
|
▲ 보어는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에 영향을 미친 키에르케고르의 사상 속에서 양자역학을 이해했다고 한다. |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남긴 것이죠? How wonderful that we have met with a paradox. Now we have some hope of making progress. 우리가 (양자역학이라는) 패러독스를 만나게 된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제 우리는 진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또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Every valuable human being must be a radical and a rebel, for what he must aim at is to make things better than they are. 가치 있는 인간이 되려면 혁명가가 돼야 하고 반란자가 돼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과거보다 나은 세계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보어가 전달하려는 내용이 무엇인지는 아시겠죠?
이 이야기 속에서는 그가 과학자가 아니라 철학자라는 인상을 받게 합니다. “Two sorts of truth: trivialities, where opposites are obviously absurd, and profound truths, recognized by the fact that the opposite is also a profound truth. 두 가지의 진리가 있다. 하찮은 진부함이라는 것이다. 진부함 속에서는 반대라는 것은 명확하게 터무니 없는 짓거리다. 또 심오한 진리의 세계가 있다. 이 세계 속에서는 반대란 심오한 진리다. 양자역학은 진부하고 평범한 속에서는 이해할 수 없고 오히려 기존의 학설을 부정한 반대이론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덧붙여서 이야기하자면 세상을 거꾸로 볼 때야 비로서 진정한 과학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죠.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키에르케고르”
그래서 똑똑한 보어는 이러한 철학적 명언을 남겼습니다. “Every sentence I utter must be understood not as an affirmation, but as a question. 내가 말하는 이야기는 맞는 말이라고 긍정으로 이해하지 말고 의문으로 생각하라.”
쇠렌 키에르케고르(Soren Kierkegaard)라는 철학자 아시죠? 불안(anxiety)과 절망(despair)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실존주의(existentialism) 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실존사상의 선구자라고도 불립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 영어이름으로 는 상당히 유명한 작품이죠.
요는 보어가 양자역학의 대가가 되는 데 이 철학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겁니다. 양자역학과 그 복잡한 실존철학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실존철학에서 양자이론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보어는 어떤 힌트를 얻은 것일까요? 키에르케고르도 덴마크 코펜하겐 출신입니다.
보어는 그래서 이런 말을 남긴 것 같습니다. “I am a very Bohring man. 나는 정말 귀찮게 떠드는 사람이야.” 귀찮게 하다는 bore라는 단어 아시죠? 보어의 이름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이렇게 말을 한 겁니다.
아인슈타인이 “God doesn’t play dice. 신은 주사위 놀음으로 세상을 만든 것은 아닐 거야.”라는 이야기에 보어는 이렇게 응수했다고 합니다. “Stop telling God what to do with his dice. 주사위로 뭘 했는지 신에게 묻는 짓은 이제 그만 두게.”
“의문이 생기면 우파니샤드 철학을 찾아”
어떤 이야기 같습니까? 신을 부정하는 논리조차도 거대한 양자역학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I go into the Upanishads to ask questions. 난 의문이 생기면 우파니샤드(철학)을 찾아간다.” 대단한 과학자죠?
이런 이야기도 남겼습니다. “It is a great pity that human beings cannot find all of their satisfaction in scientific contemplativeness. 과학적인 추론으로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커다란 비극이다. 물리학의 세계, 양자역학의 세계가 광대무변하다는 이야기죠?
보어는 비록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원자폭탄 개발을 반대했고, 핵무기 경쟁(nuclear arms race)을 예언했다고 합니다. “That is why I went to America. They didn’t need my help in making the atom bomb. 내가 미국에 온 이유가 바로 그래. 그들(미국)은 원폭을 만들면서 내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거든.”
보어는 원자폭탄에 대한 비밀은 공유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한 학술대회에서 말했습니다. 맨하탄 프로젝트는 소련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들은 루스벨트 대통령은 보어를 강제로 영국으로 보냅니다. 보어는 다시 처칠 수상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핵 기술은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
“It seems to me Bohr ought to be confined or at any rate made to see that he is very near the edge of mortal crimes. 생각하기에 보어는 감옥을 보내 감금시키던지, 아니면 적어도 그가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만들어야 합니다.” 보어를 인수받은 처칠 수상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보어가 좀 모자란 것 같나요? 과학기술은 독점적으로 소유해서는 안되고 인류가 서로 공유해야 한다는 소박한 이야기입니다.
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이 인류를 위한 것이라면 보어의 이와 같은 철학은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는 보어와 같은 훌륭한 과학자를 통해 배울 게 있습니다. 그들이 이룩한 과학기술 자체가 아니라 인류를 사랑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사상과 철학입니다. 위대한 철학 속에서 위대한 과학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