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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와 아인슈타인

by hasd 2008. 1. 7.



피카소와 아인슈타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현대의 문을 연 천재들을 얘기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두 사람은 단연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이다. 이 두 천재의 공통점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분석과 글들이 나와 있다.

둘은 모두 20세기 초반에 자신들의 대표적인 업적을 남겼다. 큐비즘의 시대를 연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게 1907년이었고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소개된 것이 1905년, 일반상대성이론이 발표된 것이 1916년이었다.

<천재성의 비밀> <아인슈타인, 피카소: 현대를 만든 두 천재> 등의 책을 쓴 과학사학자 아서 밀러는 창의성이란 통합적 사고와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특히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의 경우에는 언어적 사고보다 시각적 사고에서 천재성이 우러나왔다고 설명한다. 과학과 예술이라는 어찌 보면 그리 닮지 않은 두 분야에서 나란히 천재성을 발휘한 이들의 유사성은 우리에게 많은 걸 시사한다.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반골 기질을 많이 갖고 있다. 문제를 보이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늘 째 보고, 갈아엎어 보고, 뒤집어 본다. 과학자의 이런 반골 기질이 종종 비범한 발견을 낳는 것이다. 나도 명색이 자연과학자인만큼 반골 흉내를 내보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의 공통점을 찾는 데 노그라져 있으니 나는 삐딱하게 한번 뒤집어보련다. 이 둘의 차이점을 찾아보겠다는 말이다.

나 역시 이 두 사람 모두 인류 역사에서 또다시 태어나기 힘든 천재라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이 천재성을 발휘하기에 이른 과정은 무척 다르다.

이 둘을 야구선수로 비유한다면 아인슈타인은 타율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어느 날 드디어 장외홈런을 때린 사람이고, 피카소는 수없이 많은 단타를 치다 보니 심심찮게 홈런도 때렸고 그 중에는 몇 개의 만루홈런도 나온 것이다. 피카소는 평생 엄청난 수의 작품을 남겼다. 그가 남긴 작품 중에는 솔직히 평범한 것들도 많다. 그러나 워낙 많이 그리다 보니 남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수작을 남기게 된 것이다.

단타에는 큰 관심이 없고 그저 홈런만 노리는 선수들이 예술과 과학 분야에 유독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입단한 지 여러 해가 지나도록 홈런 한번 치지 못하고 지저분한 단타만 치고 있는 자신을 보며 끝없는 회의에 빠지는 이들도 많다. 내 주변의 젊은 과학도들 중에도 이처럼 자학적인 선수들이 제법 많다. 그들에게 나는 묻는다. 아인슈타인처럼 될 자신이 있느냐고. 고개를 떨구며 아니라고 답하는 선수들에게 나는 피카소가 되라고 말한다.

나의 이 같은 분석과 처방이 피카소의 천재성에 누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두뇌 회전이 특별히 우수한 사람들이 모두 대단한 업적을 내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주변에서 늘 보고 있다. 나는 과학자에게 섬광처럼 빛나는 천재성보다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더 소중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인슈타인보다 피카소 같은 학생이 좋다.

기린의 목은 아무리 잡아 늘여도 길어지지 않지만 과학도의 키는 끊임없이 큰다. 그리고 키는 조금만 커져도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홀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법이다.

후배들이여, 아인슈타인이 못 된다고 실망하지 말라. 부지런히 뛰다 보면 앞서가는 피카소의 등이 보일 것이다. 너무 조바심내지 말고 신명 나게 뛰어보자.

http://www.sciencetimes.co.kr/data/article/24000/0000023132.jsp?WT.mc_id=sc_newsletter&WT.linkid=0000023132&WT.senddate=2008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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