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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

인터넷 외의 분야에서 혁신을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

by hasd 2015. 8. 18.



TONY AVELAR/ASSOCIATED PRESS
구글의 무인차 프로젝트는 수익 사업에서 투자금을 충당하는 비수익 사업 중 하나다. 지주회사 신설 결정은 혁신의 잠재력과 한계를 모두 보여준다.

수익 사업을 비수익 ‘문샷’ 프로젝트에서 분리하기 위한 구글의 지주회사 신설 결정은 왜 수많은 기술적 혁신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생산성 향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인터넷 검색에서 모바일 소프트웨어까지, 미국 IT 기업들은 우리가 일하고 즐기고 의사소통하는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체감되지 않는다. 근로자가 단위 시간당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인 생산성은 지난 5년간 단 0.4% 증가했을 뿐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래 가장 느린 속도에 속한다. 이것이 고민스러운 이유는 장기적으로 우리의 생활수준을 결정하는 게 바로 생산성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기술 비관론자들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주는 혜택이 부풀려졌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낙관론자들은 생산성 수치가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제3의 설명도 존재한다. 획기적인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인터넷을 제외한 다른 영역에선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구글은 스마트 콘택트렌즈, 드론, 무인차 등 색다른 프로젝트에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를 상업성있는 사업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이번 조직개편은 이런 상황에 안달이 난 주주들을 달래기 위한 것이다. 주주들은 구글의 여러 사업 중에 돈을 벌 수 있는 게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고 싶어한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진보정책연구소’의 마이클 멘델은 최근 연구에서 앞선 혁신의 물결이 정보처리, 교통, 의학, 에너지, 신소재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다고 말한다. 1967년 영화 ‘졸업’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주인공이 “미래는 플라스틱의 시대가 될 거야”라는 말을 들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1930년대와 40년대 열가소성 플라스틱이 나오면서 현재 기업과 가정에서 흔히 쓰이는 제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오늘날 이에 버금갈 만한 신소재 분야의 혁신은 어디에 있는가? 1987년 노벨 물리학상은 고온 초전도체를 발견한 학자들에게 돌아갔다. (고온 초전도체는 30 K 이상의 온도에서도 초전도성을 보이는 물체를 말한다.) 하지만 멘델이 지적한 대로 초전도체가 상용화된 케이스는 거의 없다.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작은 입자로 새로운 소재를 만드는 기술을 통칭하는 나노기술은 테니스공과 냄새 저항 직물에 적용된 정도로, 응용범위에 있어 강철이나 플라스틱과는 비교도 안된다.

생명과학 분야에도 엄청난 투자가 이뤄졌지만 1930년대와 40년대 항생제에 견줄 만한 획기적인 진전은 일궈내지 못했다. 인간 게놈 지도가 나온 건 벌써 10년도 더 전이지만 시판되는 유전자 치료제는 아직 하나도 없다.

사실 혁신을 수치화하긴 어렵다. 최근에야 존재하게 된 활동은 정부 통계치에 제대로 반영되기 힘들다. 멘델은 고용주가 요구하는 스킬에서 혁신을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라며 이 문제를 우회한다. 일례로 급증하는 광산, 지질, 석유 엔지니어 수를 보면 셰일 오일 및 가스 혁명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비해 2006-07년 사이 생물학, 의학, 화학, 신소재 과학자 수는 감소했다.

멘델은 구직사이트 ‘인디드’의 채용공고를 분석한 결과 지난 4~6년 사이 ‘안드로이드,’ ‘수압파쇄법,’ ‘로봇공학’ 같은 말이 포함된 공고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밝힌다. 하지만 ‘복합재료,’ ‘생물학자,’ ‘유전자,’ ‘나노기술’을 언급한 공고는 감소했다. 멘델은 작금의 경제에서 혁신은 “불규칙하게 발생한다”고 결론짓는다.

스마트폰이 얼마나 많은 것을 변화시켰는가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것이 변화시키지 못한 많은 것을 못보게 된다. 기술 낙관론자들은 차량공유 앱 ‘우버’가 생산성 데이터에는 반영되지 못하는 방식으로 자동차 라이드를 개선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JP모건 이코노미스트들은 미국인이 택시나 콜택시보다 10배나 더 많은 지출을 하는 비행기 여행의 경우를 언급하며, 생산성 수치에는 비행기 여행의 질이 얼마나 떨어졌는지가 나와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3등석 좌석은 1990년대보다 2인치나 더 좁아지고 줄간 간격도 2~5인치 좁아졌으며, 승객 수는 더 많아지고 연착되는 일도 잦아졌다. 또한 제트여객기가 더 안전하고 항공료도 더 쌀 지는 모르지만 더 빠르진 않다. 보잉의 최첨단 787 드림라이너는 1958년 운항을 시작한 707보다 전혀 빠르지 않다.

왜 기술업계 외의 다른 분야에서 혁신이 체감되지 않는지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순 없다. 어쩌면 업계가 더 안전하고 환경에 덜 해로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혁신적인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것이 한 가지 이유가 될지 모른다. 이런 제품은 사회에는 바람직하지만 생산성을 높여주진 않는다. 멘델은 미 식약청(FDA)이 신약을 승인할 때 단순히 얼마나 효능(혁신성)이 있느냐보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환자에게까지 이를 수 있느냐를 감안한다면 혁신이 촉진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이유는 지식이 축적됨에 따라 진정 혁신적인 발견(발명)은 나오기가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2012년 ‘네이처 의약발명 리뷰 ’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1950년 이후 R&D 비용 10억 달러당 승인받은 신약 수는 9년마다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신약, 특히 항암제 승인 건수는 2012년 이래 증가 추세지만, 상기 연구의 저자 중 한 명인 잭 스캐넬은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라고 말한다. 효과적인 기존 약물 수가 많아질수록 R&D는 더 희귀하고 치료하기 어려운 질병에 치중하게 되고, 이로 인해 혁신적이고 성공적인 새로운 치료법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사람에게만 혜택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혁신을 예측할 수는 없다. 인터넷 붐도 예기치 않게 다가왔으며 유전자 치료, 나노기술, 드론, 무인차 같은 분야에서의 혁신도 이미 가까이 와 있는지 모른다. 구글, 아니 ‘알파벳’ 역시 문샷 프로젝트 중 하나가 대박을 터트릴지 누가 알겠는가.

적어도 그때까지는 우울한 생산성 추세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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